정선 가는 길.
꿈에나 그리던 첩첩산중 아리랑 고장 정선으로 가는 길은 오지마을을 향한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추암에서 일출을 만나고 삼척항으로 가려했으나 숨박꼭질 하는 햇님 덕분에 애초 일정을 변경하여
정선 5일장이 열린다는 정보를 촛대바위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들은터라 역사 깊은 정선 장터를 딸과 함께 보기로 했다.
추암에서 자동차전용도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42번 국도와 연결되는데
그림속에서나 봄직한 첩첩산맥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는 잔설 덮인 숲은 아름답기만 하다.
희끗희끗한 산기슭 겨울 나무들이 저들끼리 화답하며 세월의 무게를 안고 서 있다.
동해에서 정선가는 백봉령 고개를 넘고나서도
해발 700고지 표지판이 나타나고 다시 나타나며 반복되는데 첩첩산중임을 실감나게 한다.
가는 길 내내 버스 한 대 지나지 않더니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가끔씩 차창 밖으로 스치는 길가 마을엔 깊은 겨울인양 하얀눈이 소복하다.
언제쯤 내린 눈인지 얼핏 보아도 발자국 흔적조차 없어 다른 세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는 듯 하나,
산속 외딴 곳에 사는 적막함과는 달리 힘차 보이는 빨간 지붕이 인상적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과 산간 오지를 이어주는 가교같다.
동해 입구에서 자동차전용도로 들어서자마자 보았던 도로켠 언덕배기 너와집 비슷한 집 한 채를 제외하고는
오는 동안 내내 그다지 옛집다운 풍경을 보질 못했으니,
아리아리 아라리 부르며 오지에 갇혀 살며 서러웠던 정선 마을도 서서히 두멧골 정적을 거부하는 듯 했다.
아우라지역.
무겁게 침묵하던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린다.
오지 산간에 함박눈이 내리니 앙상하게 서있던 겨울나무들이 햇살없이도 빛나보인다.
바람의 흔적조차도 거부하지 않고 서로를 감싸며 아름답게 피어나는 산맥들이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풍모답다.
얼마쯤 갔을까? 자그마한 읍내를 지나고 있다.
두리번거리는데 아우라지역 이라 쓰인 이정표가 언뜻 스친다.
생각지도 않게 그 유명한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아우라지를 보게되었으니 어인 횡재란 말인가?
정선 산간에 함박눈이 쌓이면 오도가도 못하고 갇힌단다.
춘설이니 괜찮다 해도 어서 떠날 자세로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역사의 숨결을 보게되어 신기하게 여길줄 알았던 딸아이도 시큰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 시선이 가는대로 마구마구 셔터를 눌렀다.
멈출줄 모르고 펑펑 함박눈이 내리니
정말 정선에 갇힐것 같아 섶다리 입구에서 몇 컷 담고는 돌아선 아쉬움이 크다.
아우라지 섶다리.
정선아리랑 애정편의 발상지인 아우라지는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삼척 중봉산에서 흐르는 임계면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하여 어우러진다하여 아우라지라 불린다.
정선 사람들은 두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인 이곳 아우라지에서 뗏목에 나무를 싣고는
산 깊고 물 깊은 오지를 떠나 한양 남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우라지 섶다리는 우리나라 유일의 T 자형 섶다리며 높이 1.5m 길이 300m 국내 최장의 섶다리이다.
시간 저 편 것들을 불러내 멈춘 듯 흐르는 아우라지 강물 위로 춘삼월 함박눈이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궂은 날씨 탓인지 대체로 젊은이들이 섶다리를 건넌다.
디지털세대가 문명 저 너머 시간 속에서 천년만년 이어질 세월의 강을 건너는 듯 느껴진다.
실재로는 생전 처음보며 꿈결처럼 만난 섶다리를 시선머무는대로 숨가쁘게 담고있는데 어째 안되겠다 싶은지
차에서 내리더니 정자가 있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담으라 손짓한다.
여송정과 아우라지 나루의 처녀상.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랑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사랑에 빠졌다.
나룻배를 타고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는데
여랑리에 사는 처녀는 노란 동박꽃을 따러간다는 핑계를 대며 유천리 총각을 만났다.
어느 날 밤 폭우로 강물이 불어 나룻배가 더 이상 다니지 못했다.
아우라지 강물을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아리랑을 불렀단다.
넷상에 찾아보니 정선아리랑에 얽힌 사연이 많은데 그 중 한 소절을 올려본다.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총각을 다시는 만나지 못해 아우라지에 몸을 던졌다는 처녀의 애닯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처녀상에 대한 사연은 정선읍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처녀상 앞 젊은 연인들 포즈가 멀리서 보아도 다정했다.
꿈결인듯 귀하게 만나 엉겹결에 시선가는대로 담은 섶다리 풍경이기에
저처럼 가보지 않은 분들 계실거 같아 많이 올립니다.
뗏목들.
먼 길 가야하는 길손의 처지와는 상관도 없이 제 멋대로 내리는 함박눈이 밉기만 하다.
모처럼 시간을 내여 여행을 하게된 딸을 위한 여행이며 ,
딸아이에게 정선5일 장터를 구경시켜 주려고 정선 가는 길이니 눈 핑계삼아 어서 떠나지만 아쉬움 감출길 없다.
무엇보다 섶다리를 건너지 못한게 찜찜하다.
함박눈은 여전히 내리지만 ,
금새 산길에 익숙해지고 다녀간 듯 스치는 풍경마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평화로운 산간마을 풍광에 취해 철없이 행복한 엄마의 표정을 훔쳐보는 딸아이가 피식 웃는다.
같은 길을 가는 차안에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초대하고 있는건 아닐까.
*정선5일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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