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오월의 숲, 산책길에서.

해린- 2009. 5. 10. 19:09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있는 비치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 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였던 오월.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告 /朱了愛情痛告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새어 무엇하리. 지금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피천득 수필집 '인연 - 오월' 전문  --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28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