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우음도의 11월 , 시간 너머 시간까지도..

해린- 2011. 11. 24. 09:57

 

 

 

 

# 햇살과 바람 , 늦가을의 노래 

 

가을이 끝나갈 무렵의 겨울로 가는 햇살은  따스한 숨결로 가슴에 저며들었다.

생명의 봄에서 녹음찬 여름을 지나 풍요의 가을을 감사히 보내고 ,

다가올 매서운 한파를 기다리며 바람 부는 허허 벌판에서 백년을 살고 천년도 살리라는,

 다부진 결속으로 가을 끝자락에 선 그것들 추임새가 저녁놀에 아름답게 빛났다.

 

 스스로 잘 살아낸 것들이 시간 너머의 시간까지 아우르며 바람찬 벌판에서 늦가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띠풀 , 질긴 생명력

 

오월의 향기를 눈부시게 자랑하며 하얗게 빛나던 띠플꽃이 가을 끝에서도 눈이 부시다.

황금빛 초지의 아름다움을 충분하게 보여 주며 나로하여금 신비스러운 색감으로 사로잡았던 질긴 생명력을 지닌 풀꽃,

어느해 가을 이곳에서 처음 띠풀임을 알게되었다.

그 이후 해마다 몇차례 이곳의 정취 속을 거닐곤 하는데  ,띠풀사이로 세차게 부는 바람까지도 친근하다.

 

그 어느 해보다  간절한 기도가 필요했음일까, 올곧은 몸피로 노을빛 만지는 매무새가 슬프게 아름답다.

 

바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햇살의 기울기를 가늠할 줄 알며 ,침묵의 인내를 지닐 줄 알며,

적어도 바람찬 벌판에서  함께 공존함으로 의미가 있음을 인정할 줄 알며,

 처음과 끝이 같도록 배려해주는 마음을 띠풀꽃은 알 것이다.

 

 

 

 

# 버드나무 , 존재의 가치

 

도도할 정도로 당당하게 홀로 빛나는 한 그루 나무 그림처럼 서 있다 . 그 이름 버드나무다.

벌판의 주변 것들을 품고서 누구에게라도 싫은 내색도 없이 온전하게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기품있게, 때로는 다정다감하게, 저 만치 앞서가고 있는 바람까지도 불러세워  벗이 되어주며 존재를 드높인다.

푸른 잎 피는 이른 봄부터 잎 지는 가을까지 푸른 생명의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맞이할 새봄을 위해 깊게깊게 뿌리를 내린다.

땅 속 깊숙히 뿌리 내리는 그 의미만으로도  우음도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다.

저무는 노을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우음도 나무는  알고 있다.

 

소녀가 나무에게 물었다
'사랑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들려다오'
나무가 말했다
'꽃피는 봄을 보았겠지?'
'그럼'
'잎 무성한 여름도 보았겠지?'
'그럼'
'잎 지는 가을도 보았겠지?'
'그럼'
'나목(裸木)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겠지?'
'그럼'
나무가 먼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도 끝났다'  --나무의 말/정채봉

 

 

 

 

 

# 노을빛 , 아름다운 생명력

 

가을 끝에서 저무는 햇살은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야생의 바람 속에서 하루를 다독이며 벌판 가득 채우는 노을빛이 새삼 정겹고 따스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풀잎 사이 , 따사로움으로 흥건히 흐르며 그것들과 나 사이 사유로 넘나든다.

 멀리 지평선까지 아득히 퍼져나간   햇살의 양만큼  편안하고 다정하게 전해진다.

 어느 때부터인가 하루해를 마감하는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즐기는데,

신비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노을빛에 매료되곤 한다.

나만이 느끼는 감탄은 아닐 것이다.

 

그  햇살에 편승하면서 다가올 우리들 겨울도 따스하기를 소망한다.

 

 

 

# 감사, 시간의 순환

 

그림처럼 서 있는 버드나무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한낮을 책임지던 햇살이 물러나면 전설같은 벌판에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내리기전 빛살은 그 무엇인가 시간을 순환시키는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다.

두손을 모으고 간절히 감사 기도를 드리는 밀레의 만종처럼

고단했던 하루의 시간에 경배하고 싶은 것이리라.

 

동트는 아침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까지, 하늘의 마음이 대지의 것들을  포근히 감싸 안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두려움의 무게로 다가서지만  이제 그와는 못할 말이 없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도 ,미움도 그에겐 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내가 게으를 때, 시간은 종종 성을 내며 행복의 문을 잠거 버린다.번번이 용서를 청하는

부끄러운 나와 화해한 뒤 , 슬며시 손을 잡아주는 시간의 흰 손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내가 깨어 있을 때만 시간은 내게 와서 빛나는 소금이 된다.염전에서 몇 차례의 수련을 끝내고 이제는 환히 웃는 결정체,

내가 깨어 있을 때만 그는 내게 와서 꼭 필요한 소금이 된다. -- 시간의 얼굴 중 /이해인 --

 

 

 

 

2011 1112 우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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