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이 화려한 잔치에 한동안 초대되겠네 ...
내 산책길 숲에도 제법 가을빛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가을 숲으로 밀려든 오색 빛살이 하도 고와서
진작에 연락했어야 할 ,
오래도록 잊고지내던 햇살 너머 친구 근황까지 대신 소식을 전해주는 듯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을 앞에선 내 누이같은 ,
그 무어든 아직도 그렇게는 놓아버리지 못한 채 이 길을 걷고 있구나
물리적 길이는 잴 수 있으나 그 깊이는 잴 수 없는 , 내가 수시로 걷는 산책길이다
풍경 그대로 사계절 분위기를 바꾸어가며
마음 다 내려놓지 못한 절절한 어떤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숲길이며
시선으로 포착하는 너머의 것까지
다양한 코드로 이해해주는 숲이고 길인 것인데
조락의 숲 그 길을 여전히 나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걷고 있구나
화무십일홍 , 허공에 꿈을 뿌리며 우수수 떨어지던 봄날의 벚꽃과도 같이
시간의 길이와 형태만 다를 뿐
지고지순 했던 초록 잎새의 날들은 가고
사라지는 허망에 앞서 최상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것만 같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또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해 환희의 송가라도 부르는 것일 게다.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되어진 모자를 잃어버려 애당초 계획한 목적지까지 못 가고
걸었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잃어버린 모자 대신 춤추듯 일어서는 낙엽송들이 현란하다
이 근사한 가을 숲에서 어찌 잃어버린 모자에 연연할 수 있을까
- 안도현/가을 엽서 -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던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201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