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는 곳

민들레 뿌리 /도종환

해린- 2018. 3. 7. 13:21

 

 

 

 

 민들레 뿌리 / 도종환 시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 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여져나가는 세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겉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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