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서.
여수에 볼일있어 내려간 여행길이지만
내심, 남녘에서 시작하는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더 컷다.
제철에 보지못한 동백꽃은 말할것도 없고 운좋으면 제주도에 피었다는
매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야무진 기대로 여수로 가기도전에
하동 매화마을로 숨가쁘게 달렸다.
아직은 겨울 바람이 불고있지만 겨우내 잘 참아낸 나무가지에 물이 오르고
살며시 내민 봉우리엔 봄이 꿈틀 거린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면 섬진강 매화마을은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와 더불어
섬진강 봄날은 상춘객을 부르기에 바빠진다.
내게있어 여행길은 단순하다.
동행이 있을지라도 거의는 내 그림자와 대화하길 즐긴다.
그러다 보니 내 여행법을 잘 아는 가족 또는 친한친구 외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불편한 여행은 별로 즐기지 못했다.
보이는 풍경 못지않게 내면의 풍경을 중요시하는 탓도 있지만
재미나고 즐겁게하는 재주가 없어 더 그런 것 같다.
나이 드니 가끔은 낯선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시리도록 푸른 강물처럼 맑은 마음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길 속 그림을 그려보며 풀어놓는
서로의 이야기에 맘껏 웃어도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멋진 여행이지 싶다
남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어김없이 들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여서도 그렇지만
꿈 꾸던 시절 아름답게 보았던 그 기억의 강물을
조금 더 붙잡아 두고픈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하동 매화마을 주변 섬진강은 아이들 어릴적 여름에 단골 휴가지였다.
모래라 이름하기엔 너무도 부드럽고 고운 하얀 모래밭에서
아이들과 금새 허물어질 모래성도 쌓고
강 깊은 곳은 무서워 들어 가지 못하고 강가 얕은 곳에서 재첩줍기에 신나했다.
기억의 흐름은 거슬러 추억 할 수 있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슬를 순 없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수한 세월이라지만 지난 시간들과 빠르게 멀어진다.
꿈에 젖어 살던 적 보던 강물의 빛은 이미 아니지만
한결같은 강물은 저 홀로 잘도 흐른다.
먼길 끝에서 더듬어보는 강물소리,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며 올 적마다 들을 수 있는 소리임에도
나이와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려지기도 한다.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 가에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
섬진강가에서 나고 자라 섬진강 곁에서 살며
도반으로 여기는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가에 서 본다.
너무 아름다우면 서럽고 슬픈가 보다.
에움길 지나 온 기억의 조각들이 강물에 밀려갔다 밀려온다.
같은 모래라도 물에 젖은 모래빛과 햇빛에 반사되는 모래빛이 다르다.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 나누어 갖는 빛깔은
저 마다 달라 같은 빛으로만 존재하며 살 수 없다.
여행하다보면 길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닿아 있음을 본다.
돌아가는 인생길 또한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