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섬진강에서.

해린- 2006. 2. 9. 22:18

 

 

 

여수에 볼일있어 내려간 여행길이지만

내심, 남녘에서 시작하는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더 컷다.

제철에 보지못한 동백꽃은 말할것도 없고 운좋으면 제주도에 피었다는

매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야무진 기대로 여수로  가기도전에

하동 매화마을로 숨가쁘게 달렸다.

아직은 겨울 바람이 불고있지만 겨우내 잘 참아낸 나무가지에 물이 오르고

살며시 내민 봉우리엔 봄이 꿈틀 거린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면 섬진강 매화마을은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와 더불어

섬진강 봄날은 상춘객을 부르기에 바빠진다.

 

 

 

 

내게있어 여행길은 단순하다.

동행이 있을지라도 거의는 내 그림자와 대화하길 즐긴다.

그러다 보니 내 여행법을 잘 아는 가족 또는 친한친구 외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불편한 여행은 별로 즐기지 못했다.

보이는 풍경 못지않게 내면의 풍경을 중요시하는 탓도 있지만

재미나고 즐겁게하는 재주가 없어  더 그런 것 같다.

나이 드니 가끔은 낯선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시리도록 푸른 강물처럼  맑은 마음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길 속 그림을 그려보며 풀어놓는

서로의 이야기에 맘껏 웃어도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멋진 여행이지 싶다

 

 

 

 

남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어김없이 들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여서도 그렇지만

꿈 꾸던 시절  아름답게 보았던 그 기억의 강물을

조금 더 붙잡아 두고픈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하동 매화마을 주변 섬진강은 아이들 어릴적 여름에 단골 휴가지였다.

모래라 이름하기엔 너무도 부드럽고 고운 하얀  모래밭에서

아이들과 금새 허물어질  모래성도 쌓고 

강 깊은 곳은 무서워 들어 가지 못하고  강가 얕은 곳에서 재첩줍기에 신나했다.

 

 

 

 

기억의 흐름은  거슬러 추억 할 수 있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슬를 순 없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수한 세월이라지만 지난 시간들과 빠르게 멀어진다.

꿈에 젖어 살던 적 보던 강물의 빛은 이미 아니지만

한결같은  강물은 저 홀로 잘도 흐른다.

먼길 끝에서 더듬어보는 강물소리,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며 올 적마다 들을 수 있는 소리임에도

나이와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려지기도 한다.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 가에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

섬진강가에서 나고 자라 섬진강 곁에서 살며

도반으로 여기는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가에 서 본다.

너무 아름다우면 서럽고 슬픈가 보다.

에움길 지나 온  기억의 조각들이  강물에 밀려갔다  밀려온다.

같은 모래라도 물에 젖은 모래빛과 햇빛에 반사되는 모래빛이 다르다.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 나누어 갖는 빛깔은

저 마다 달라 같은 빛으로만 존재하며 살 수 없다.

여행하다보면 길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닿아 있음을 본다.

돌아가는 인생길 또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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