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한 여행길 1- 순천만에서.
월요일부터 소풍날 받아논 아이처럼 하늘만 쳐다보는데
전국적으로 강풍 불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한주 늦추어 다녀오라는
주문이다.
다음주면 답답한 방에서 다시 책과 씨름할 아이를 생각하니 시간이 없다.
목요일 ,하늘을 보니 비우지 못한 내마음처럼
먹구름 가득이다.
아침부터 부산한 몸짓에 떠날것 같은 눈치를 챘는지 출근해서도 전화다.
디카도 고장이니 가지고 싶어하던 캐논
카메라를 사줄테니 다음주에 가라한다.
시간 없는 아이는 비바람이 불어도 떠나자 한다.
여행이라면 그저 좋은 철없는 엄마는 덩달아
신이난다.
실로 오랫만에 두째딸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겨울 매서운 한파에도 어지간하면 흔들리지 않던 차가 표준속도를 유지함에도
흔들린다.
사월의 훈풍은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거센 강풍이 놀랍다.
딸도 놀랬는지 시디를 찾아 끼우며 너스레를 떤다.
애써
태연한척 봄산에 대해 얘기했다.
바람소리 너머 차창밖 풍경은 파릇한 싹이 돋아나는 봄이 한창이다.
윤기나는 연두색 잎 사이로
색색의 꽃들이 수채화처럼 스친다.
여행 좋아하는 엄마와 현장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빠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어릴때는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럴때면 늘 나는 풍광 좋은 곳을 택했고 남편은 문화유적지를 고집했다.
경주는 하도 많이 가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면 아이들은 지겹다고 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대학가기 바쁘고 대학 가서는 책과 씨름해야하는 법학이 전공이여서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했다.
방학이면 신림동으로 보내는 아빠의 뜻에 순종한 착한 딸이여서 늘 마음이 애잔했다.
경치좋고 편한 곳에 가서 아이를 쉬게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땀 흘리며 걷고 싶다며 엄마 안가본 곳을 가잔다.
이번 여행은 오로지 두째딸을 위한 시간이다.
제 멋대로 부는 바람 속을 달려 순천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다.
바람은 강하게 불지만 하늘은 먹구름 걷히고 좋을 만큼의 햇살을 비춰준다.
순천만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 다소 낯설긴해도 길 안내판 따라가니 쉽게 찾는다.
갯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그리움으로 남겨둔 순천만을 택한 이유는
생태계의 현장에서 딸이 마음가짐을 새로히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다.
사방에서 뿜어내는 봄향기와는 달리 강풍과 합세한 갯바람이 갈대에 실려 무섭게 분다.
겨울파카와 바람막이 옷을 아이에게 입히긴 했지만 심하게 부는 바람 속을 데리고 왔나 싶은데
정작 아이는 엄마 걱정이다.
디카에 담을 수 있겠냐며 웃는다. 어딜가도 이미지 담느라 바쁜 엄마를 아나보다.
갯벌 입구에 정박해 있는 배위로 강풍 속을 헤집고 비춰주는 오후의 봄햇살이 고맙기만 하다.
탐사선을 운행하지 않아 걸어 가기로 한다.
순천만의 십리길 갈대밭 길을 강풍 속을 헤치고 걷자니 겁이 난다.
나 좋아하는 길이 갈대숲 사이 사이로 그림처럼 이어지고 거센 바람도 아랑곳 않는
갯마을 사람들 부지런한 손놀림이 바쁘다.
정보에 의하면 뻘배를 타고 조개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데 상황이 다르다.
선착장에 배들이 한가하게 정박해 있던데 아마도 강풍이라 그런가 보다.
순천만의 자랑인 흑두루미도 민물도요세떼도 만날 수가 없다.
날아갈듯이 게세게 부는 바람소리가 갈대숲에 가득 차고 해 서산에 너머질까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개펄이 바다물과 만나는 지점까지 걷기엔 악조건의 날씨이고 늦은 오후다.
갈대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따라 걷는데 개펄에서 드디어 이름모를 물새를 만난다.
습지에서 먹이를 찾는 먹이사슬의 새는 생태계의 지표가 된다.
생명력이 생성되는 곳에서 서로의 존재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어울려 지낸다.
생동감 있는 봄에 만나는 습지의 새가 의미롭게 다가선다.
가까이 다가가 노니는 몸짓을 담아 본다
자신과의 싸움은 자신을 이기는데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불어대는 강풍 속을 딸과 걷는다.
자신의 의지만이 강한 바람을 이기며 걸을 수 있다.
인간의 한계 끝까지 걸어 나가는 길도 자신의 길이다.
걷다보면 눈물 나도록 고생스런 길도 만나지만 인내로 나아가면
눈물거두는 건 자신 너머의 시간이다.
습지에서 살아가는 갈대의 몸부림은 바람탓만이 아니다.
물속 깊숙히 내린 뿌리는 물속의 토양분이 되어 습지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몸짓에서 강한 생명력을 본다.
며칠, 경치 좋은 곳에서 편안히 지내며 재충전 하라니 몸을 혹사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대체로 긍정적인 사고와 집념이 강한 아이긴하나 강풍 속을 걷는 모습보니 내마음이 춥다.
심한 바람에 차에 가서 있으라 하고 싶지만 아이가 원했으니 그냥 걷게 한다.
단순한 상식외엔 생태계에 아는 바가 없다며 순천만을 계기로 관심을 가져 본단다.
생명력의 몸부림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나는 모르나 자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기특하다.
바람 분다고 투정 부리는 엄마를 앞선다.
딸이 걷는 인생길엔 심한 바람은 불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시간 반 정도나 걸었을까 .순천만을 다 돌아보기엔 시간이 짧다.
동산 같은 산길을 넘어 가려는데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배낭매고 카메라든 남학생 외엔 사람이라곤 없다.
입구까지 돌아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기에 바빠진 마음으로
어둠 내리기전에 딸을 앞세워 걷는데
어디서 날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물새 우는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딸도 들었는지 새소리 들린다고 외치며 걷는다.
추울까 걱정인 엄마 표정을 이미 훔쳐본 것일게다.
겸손하게 저녁햇살이 갯벌 위에 포근히 내려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