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보리밭 단상.

해린- 2006. 5. 25. 14:55

 

 

바래봉 철쭉을 가슴 물리도록 보고 다음 일정있어 구례 화엄사로 숨가쁘게 달려가는데 보리꽃 피어 노르스름한 마을 보이니 묻지도 않고 차를 세운다.보리밭 타령을 어지간히 했나보다. 아니, 유년시절의 보리밭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을지도 모른다.논밭에 대한 그리움을 종종 얘기했으니까.농사가 유일한 수입원이였던 시아버님은 돌아가시는 날에도 논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 후 한동안 남편은 괴로워했다.

 

일흔의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애쓰다가만 가신걸 아직도 가장 큰 슬픔으로 안고 사는 이유를 이젠 조금은 알 것도 같다.시아버님이 자식공부 시키느라 하나 둘 팔아가던 논을 시어머님은  억첵스레 사들였다.농사지을 사람 없으니  투자가치있는 땅을 사라고 주위에서 말려도 논밭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그런 어머님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시댁에 가면 너른 논에서 일을 하시는 어머님을 뵈면 박경리의 토지를 떠오르곤 했다.

 

 

 

 

논밭은 여전히 변함이 없건만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은 고도문명에 힘입어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호롱불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보다 멀어졌고 아득하여 기억조차 없는 보릿고개는 어느나라 얘기였던가 할만큼 모두 부유하다.보리이삭 줍던 아이들은 웰빙식으로 둔갑한 보리밥집을 드나들며 어릴 적 고향으로  내달린다.시골마을에서 향수어린 마음으로 남 이야기하듯 만난 보리지만 여전히 농부에겐 생활이며 꿈이다.

 

알알히 영글어 노르스름한   보리밭 멀리로 경운기가 보인다 .소가 밭을 갈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니까 소들이 쟁기질을 못하는데 어찌 쟁기질을 시킬수 있냐며 코믹하게 거든다.필요에 의해 가르켰으니 소가 쟁기질 못함은 당연하다.타고난 재능이 아니였을테니까.소에서 경운기로 대물림된지는 오래다.사람대신 기계의 몫이 거의다.

 

 

 

 

너른 보리밭에 서니 한 친구가 생각난다.며칠전에 고창 보리밭 가려다가 출발 시간늦어 유명산으로 대신했더니 돌아와 저녁먹으며 내내 아쉬워했다.내 블로그에 이쁘고 아름다운 이미지만 올리지말고 시골모습 같은 순박한 사진도 올리라며 웃던 친구다 .풋풋한 산골 순이처럼 어디선가 더덕향 풍긴다며 유명산 숲에서 헤매던 모습이 선하다.한동안 어느 마을에서 함께 보았던 산자락 감싸안은 그  안개와 넓고 푸른 보리밭 올려주니 푸르디푸른  지금의 그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모내기가 시작된다.파릇한 연두빛 모판을 보니 농사가 천하지대본이셨던 소박한 시어머님의 꿈을 본다. 부모님과 따로 살았기에 모내기가 한창일때는 내려가곤 했다. 나는 논이나 밭에 나가 무언가 하고 싶었다 .농사를 낭만쯤으로 알고 있는 며느리가  한심하셨던지 어머님은  집안 일만 시키셨는데 그 당시 내겐  불만이였다.지금은 기계화 되었지만 그 시절 모내기는 동네 잔치날이였다.

 

품앗이 횟수에 따라 모내기 일손의 많고 적음이 비례했다.식사량도 만만치 않아 집에서 밥하는 사람도 두세명이였으니 모내기는 농사의 하이라이트였다.소달구지 소리 들으며 자라나 흙과 더불어 살다가신 부모님 덕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지 시골마을을 지나니 나보다 더 좋아하며 소니 디카로 열심히 담는다.농사로 살아 갈 수 없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대물림이 끊긴 들판에선 오늘도 농부의 꿈은 영글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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