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배롱나무
해린-
2006. 8. 7. 22:32
송광사 대웅전 앞에
배롱나무 한 그루
너른하게 꽃피우고 있었다
다붓한 절간
눈맛나는 붉은 꽃숭어리마다
술렁이는 꽃빛발에
대웅전 부처님은 낯꽃 피고
나는 꽃멀미로 어지러웠다
밤그늘이 조계산 기슭을
바름바름 기어내려올 때쯤이야
이곳에서는 배롱나무가 부처였음을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 배롱나무 부처/허형만--
집을 막 나서려는데 먹구름 가득인 하늘이 요란스레 울부짖더니 큰 울음을 터트린다.
큰 맘 먹고 카메라 들고 나왔는데 다시 들어 갈 수 없다.
언젠가 바람님 블로그에 올려진 대공원 연못의 수련을 올해는 꼭 담아봐야지 했는데
기회를 놓쳐 능소화 아직 피어 있다면 능소화라도 만나야지하며 나왔는데 소나기다.
포기하고 웅장한 서울대 정문을 들어서는데
그만 울고 싶은지 뚝 그친 하늘이 말갛게 얼굴을 내민다.
교정 곳곳에 초록 빛깔을 한껏 자랑하는 잔디가 마음을 끈다.
얼마만인가?
한숨 돌리며 카메라 매고 나와 기지개를 켜본다.
잘 담지 못해도 그냥 좋을 기분으로 천천히 걷는데 배롱나무 한그루 화사하게 반긴다.
소낙비에 몸을 적신 꽃잎이 햇살 속에서 눈부시다.
거짖말처럼 뚝 그친 소낙비가 지나가니
눈부신 햇살 나타나 꽃잎에 머무는 고운 빛깔의 바람,
살아 간다는 건 그런 것.
부처닮은 배롱나무 나도 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