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꽃들.
팔월 마지막 날 햇살이 사랑스럽다.
굳이 애써 보내지 않아도
스스로 떠나는 여름, 환하게 분꽃이 웃는다.
뜨거운 햇살 두려워 하지 않고
햇살 친구 삼아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교훈을 얻는다.
순환의 질서에 의해
여름은 또 그렇게 가고
가을은 또 그렇게 찾아오겠지.........
배롱나무 그늘에 가려 어두운 곳에 피어있던 상사화,
잎과 꽃이 서로 쳐다보지 못하는 애틋함에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꽃이라는데
속내를 알 수 없으나
내 보기엔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 싫다는 표정이다.
능소화 유감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능소화 없나 기웃거리며
어쩌다 만나면 이유도 없이 나홀로 반가웠다.
이곳저곳에서 여러번 만났지만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양반집 정원에서나 심을 수 있었다는
모습은 아니다.
일하다 말고 찾아 나서기도 했었는데 ....
철마다 피는 꽃이 다르듯 꽃이 지닌 특성도 다름을 본다.
햇살 가장 뜨거운 정오에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만난 시간이 정오쯤이다.
땅가까이 낮게 피어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부족함 가운데에서도 풍족하게 살 줄 아는 강인함을 본다.
어릴적 향수를 부르며 엄마 생각나게 하는 봉숭아,
능소화 담겠다고 어느 음식점 앞을 기웃거리는데
그리운 시절 풍경을 보았다.
햇살이 마당 가득 부서져 내리면
하얀 빨래가 햇살에 마르는 동안
당신이 가꾼 마당 한켠 꽃밭에서 피어난 봉숭아로
손톱에 물을 들여주고는 기뻐하셨다.
게절이 쉼 없이 오고가며
여름이면 어김없이 봉숭아 꽃은 피고 지는데
꽃물 들여주던 어릴 적 내 어머니는 팔순의 노모가 되셨다.
그냥 나선다
일하다 말고 나서고
계획도 없이 나선다.
멀리 가기도 하고
때론 아파트 주위를 돌기도 하고
이름도 없는 길을
나름대로 정해놓고는
산책길을 걷기도 한다.
기분 내키면 옷도 모자도 코디하여 나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유롭고 편한대로 나선다.
속절없이 그렇게 가는 시간 속에서도
온몸으로 피어내는 꽃들처럼
때로는 높게
때로는 낮게
그렇게 , 그렇게 살다보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만은 아니리라.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 짝 옹달샘이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한다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오늘/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