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끝끝내 닿지 못할 막막함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달력 속의 날짜, 11月
산막처럼 텅 빈 글자의 행간으로 가을은
차츰 침묵의 심지를 낮춘다
거리에 나서면 바람이 끌다버린 나뭇잎 우수수
목조 벤치 아래 굴러 다니고
아직 채 옷깃 여미지 못한 목덜미 속으로
방촌역 차단기 앞에 멈춰 선 저녁안개 감겨온다
시간이여 계절이여
꿈꾸었던 것들과 제때에 닿는 일 드믈고
모든 소원하는 것들은 뿔뿔 흩어지거나
뒤늦게 이루어졌다
홑이불처럼 가난한 마음 위에
누덕누덕 그리움만 차 오르고
빈 수레 가득 흰 이슬 날리며 바람떼는
어느 멀고 나지막한 마을로 떠나간다
바닥 드러낸 등잔처럼 희미한 내 그림자
막다른 골목처럼 서늘히 서 있는데 -- 11월 / 이해리 --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 외로움을 견디는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정호승 --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Robert Lee Fo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