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의 흔적

길위에서1-지리산 정령치.

 

 

 

누군가 그랬다 '최고의 여행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  여행의 참 멋을 아는 이의 변이겠지만 난 그래도 아직은 돌아올 수 있는 여행이 좋다.남편이 지방에 일있어 떠나는 길에 동행한 이번 주말여행은 뜻밖의 행운이였다. 집지키는 사람으로  인식된 우리나라의 실정에선 주부가 집을 비우고 길을 떠난다는게 쉽지가 않다. 지극히 보편적인  주부의 정서로 살아왔기에 선뜻  떠나는 여행에 낯선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기회만 주어지면 여행길에 나서는데 그런 내 모습이 자칫 세상 걱정없는 한가한 사람으로 비쳐질지 모르나 그렇진 않다.할일없이 비쳐지는 전업주부라도 시간내기란  생활 속에 사는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어쩌다 갖는 여유로움이다.다만, 꿈속의 길일지라도 그 길위에서  모든 것들에 화해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느껴보는 계기를 얻어 빛깔 고운 삶의 무늬를 그려 갈 수만 있으면 좋겠고  이왕 시작한 디카로 담는 세상의 여울이 행복의 가교가 되길 바라며 언제나 길위에 선다.

 

 

 

 

순천 전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지리산으로 나가는 이정표가 몇군데 있는데 정령치라 쓰인 남원 톨게이트로 나가야 한다.입구 표받는 곳에서부터 정령치 휴계소까지 구불구불한 오르막 길이 이어지는데 몇번이나 갔지만 갈 적마다 새로움이다.산안개로 드리워진 오월의 눈부신 초록잎새 사이로 설핏 비치는 저물녘 햇살이 진주빛 같다.초록잎 흔들며 불어주는 호사스런 바람이 굽어 흘러가는 길위에 머물면 담아온 머리속 두퉁을 산자락 저 멀리에 날려 보낸다.

 

 

 

 

정령치 가는길 입구에 잠시 차를 세우고 계곡을 들어서니 초록의 푸름을 고스란히 품고 흐르는 계곡물이 싱그럽다.흐르지 않는 물이 어디 물이겠는가.어디로부터 흘러 내려와 이곳을 지나 흐를까 .예까지 찾아 흐름도 제 갈길이라 쉬임없이 흐른다.잠시 멈춰 다리 위를 걷는 길손도 디카에 무언가 담는 내 발걸음도 시간을 거스르지 못한다.어둠이 내리기전에 갈길이 바쁘다.흐르는 물처럼 시간을 타고 흐르는 삶이지만 힘든 마음들이 때론 역행을 꿈꾸게 한다.

 

 

 

 

날씨 좋은 어느 가을날 저 멀리로 보이던 천왕봉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올라올때 조금 남아 설핏 비쳐주던 햇살마저 감추고 짧은 시간에 갑자기 요동치는 기후변화를 본다.산안개에 감아도는 초록의 봉우리가 살포시 푸름을 보여주려 애쓴다.디카에 무언가 담겠다고 열심인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지리산의 매력은 기후변화에 있다며 여유롭게 한마디 거든다.안개라도 비라도 눈이라도 이 순간엔 아무래도 상관없음을 모르나 보다.곧 안개 걷히면 내일의 눈부신 태양이 초록숲에 찾아올텐데 잠시 숨었다고 불평하면 되겠는가.

 

 

 

 

휴계소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떠나려는데 잠깐 햇살 비친다. 참으로 변덕스럽다.까마귀 울음소리 생경하여 쳐다보니 길손들 쉬었다가는 쉼터 나무지붕에 앉았다 날아 간다. 햇살이 떨어지려다가 하늘가에 잠시 멈춰 비춘다.어디서 만나도 하루를 품어 안고 가는 노을은 아름답다.삶의 시간을 지나  최상의 휴식처로 가기 위해 우린 애쓰며 산다. 자의건 타의건 사는 동안 불어오는 온갖 바람도 만나는 인고의 길이지만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로 걷다보면 노을처럼 아름다운 인생길이지 싶다.

 

 

 

 

 

7985
 

'시간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밭 단상.  (0) 2006.05.25
길위에서 2 - 지리산 바래봉 철쭉군락지.  (0) 2006.05.23
하얀 장미.  (0) 2006.05.22
작약  (0) 2006.05.22
민들레  (0) 200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