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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흔적

향수

 

 


걷다가 폐가(廢家)를 만나면, 문득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마을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집일수록, 나는

그 집이 왜 홀로 서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무너진 돌담 위로 달빛 내리고

그 달빛이 슬며시 문풍지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나도 몰래 따라 들어가

그 집의 속살을 만져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잊혀진 체온

벌레 울음소리에 포위되어

무너진 영혼처럼 서 있는 집을 보면

나도 한 번 무너져 보고 싶어진다

 

속에 깊고 그윽한 어둠을 감추고

내 살을 파먹는 구더기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비로소, 집 한 채가 완성되리라

 

쓸모 없어 버려진 집처럼

벤치에 놓여 있는 노인을 보면

불현듯, 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낡은 집 /강수 --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 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 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 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봄날 옛집에 가서/이상국--

 

 

 

 

 

 

소수서원에서 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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